'티벳'에 해당되는 글 8

  1. 2007.05.02 티벳.세상에서 가장 높은 마을,리탕 (1)
  2. 2007.04.16 중덴의 송찬림사의 축제
  3. 2007.04.13 상위펑 마을의 크리스마스
  4. 2007.04.09 샹그릴라의 중심. 송찬림사(송찬린스)
  5. 2007.03.05 티벳사람 그리고 티벳 문자
  6. 2007.02.26 티벳하면 떠오르는 오체투지 수행
  7. 2007.02.16 라싸에 도착하다
  8. 2006.09.01 인도의 티벳 스님들, 그리고 달라이 라마

티벳.세상에서 가장 높은 마을,리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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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1월 3일, 중국 사천 리탕, 티벳 사람들


리탕. 리탕을 소개하는 말중에 가장 큰 이야기중에 하나는 세상에서 가장 높은 도시(高都)라고 이야기한다. 고도가 거의 4천 미터에 가까워서 사람들이 많이 거주하는 도시중에는 아마 가장 높을거다.

야딩에서 빠져나온 우리는 어찌어찌하다가 이 척박한 도시 야딩에 하룻밤을 지내게되었다. 도시가 너무 열악하다보니 이틀에 한번꼴로 정전이 되곤 하는데, 우리가 도착한 날도 하필이면 정전이다.

오후 늦게 도착하여 시내 이곳저곳을 돌아다닌다만, 이미 티벳과 황량한 도시는 겪을 만큼 겪어서 더이상 새롭지는 않다.
하지만, 이곳은 우리가 티벳 사람들을 만난 가장 마지막 도시가 되었다. 안녕. 티벳. 안녕.
어쩌면, 이제는 더 이상 그들을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

리탕에서 하루를 지내고 난 우리는 캉딩을 거쳐 사천성의 성도에 도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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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1월 3일, 중국 사천 리탕, 동녕도 신앙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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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1월 3일, 중국 사천 리탕, 티벳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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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1월 3일, 중국 사천 리탕, 티벳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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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1월 3일, 중국 사천 리탕, 황량한 골목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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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1월 3일, 중국 사천 리탕, 동네 꼬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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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덴의 송찬림사의 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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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12월 26일, 중국 윈난 중덴(샹그릴라),송찬림사의 축제


그것은 매우 우연한 기회였다. 멀리 샹위펑 마을을 다녀온 우리는 완전히 지쳐서 아무것도 하기 싫었다. 그래서 하루를 쉴려고 그냥 마음 먹고 있었는데, 최피디가 오늘 송찬림사에 다녀온다고 한다.
우리는 아무 생각없이 심심한데 그냥 다녀오자고 생각하고 그를 따라 나섰다.
도착하니, "와우" 축제가 벌어지고 있었다.

며칠전에 우리는 이곳에서 스님들이 뭔가를 열심히 연숙하는 모습을 보고 축제가 있다는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언제인지 정확하게 몰랐고,(심지어 한달뒤에 있다고 들었다.) 그래서 포기하고 있었는데, 너무나 운이 좋았다.

사진에 나오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모두 티벳트인들이고, 그들의 전통복장을 모두 차려입고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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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12월 26일, 중국 윈난 중덴(샹그릴라),장난기 많은 축제의 광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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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12월 26일, 중국 윈난 중덴(샹그릴라),송찬림사의 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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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12월 26일, 중국 윈난 중덴(샹그릴라),송찬림사의 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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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12월 26일, 중국 윈난 중덴(샹그릴라),송찬림사의 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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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12월 26일, 중국 윈난 중덴(샹그릴라),아저씨, 좀 무서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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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12월 26일, 중국 윈난 중덴(샹그릴라),귀여움 백배,티베탄 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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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12월 26일, 중국 윈난 중덴(샹그릴라),축제에 빠지지 않는 노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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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위펑 마을의 크리스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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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우연이었다.
우리가 상위펑 마을을 찾아간 날은 크리스마스를 목전에 둔 12월 23일이었다. 베이스캠프를 향하기 위해 우리는 어느 작은 학교를 지나게되었다.

잠시 들른 학교에서는 뭔가 분주하게 준비하고 있었고, 우리는 무엇인지 한참 궁금해하며, 일단 베이스캠프를 다녀오기로했다.

다녀오니 애들이 차려입고 작은 학교 마당에서 연극 같은 역활극 놀이를 하며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동네 어른들 몇분도 찾아오셨고.

이유를 확인해봤더니, 마침 며칠전부터 상해에서 라디오 피디를 맡고 있는 어떤 젋은 여자가 찾아와서 사전 조사를 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런데, 이 마을로 들어올때 크리스마스이기에 몇가지 선물과 풍선 같은 장식을 할 수 있는 물건들도 함께 가지고 들어왔던 모양이다.
이 작은 학교에 들려 마찮가지로 외지에서 이곳으로 발령받아들어온 젊은 여선생과 함께 작은 축제를 마련해보기로하고 이날의 행사를 준비한 모양이다.

역활극도 하고, 작자의 전통복장을 차려입기도하고(이곳 주민들은 모두 순수 티벳인들이다.). 우리들의 꼬마애들은 너무나 천진하고도 귀엽게 뛰어놀고 있었다.
아마, 상위펑 마을에서 건진건 이게 최고가 아닌가싶다.

(메리설산은 그놈의 일본애때문에, 영 날씨가 안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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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12월 23일, 중국 윈난 상위펑, 마을의 작은 소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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샹그릴라의 중심. 송찬림사(송찬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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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12월 19일, 중국 윈난 중덴(샹그릴라), 티벳절 송찬린스


지금은 행정 구역 이름으로 샹그릴라라고 바뀌어버린 중덴. 이곳은 원래 티벳인들의 땅이다. 현재도 주민의 대부분은 티벳인들이고, 그들의 생활 방식은 아직도 많은 부분 전통을 지켜가고 있다.
하지만, 현재 중국 본토에 편입되어서 점점 중국인화되어 가고 있는 부분은 어쩔 수 없지만.

이곳 중덴에 가장 큰절은 송찬림사(중국어로.송찬린스)가 있다. 티벳을 직접 가보지 않은 이들에게는 매우 새로운 경험을 안겨줄 티벳 전통의 사찰이지만, 우리처럼 티벳에 터를 잡다시키 오래 있었던 사람에게는 그다지 큰 감동을 주지는 못한다.

언덕위에는 황금색 지붕을 올린 본당과 그 주위에 흰색 회벽을 칠한 스님들의 거처가 마을처럼 형성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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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12월 19일, 중국 윈난 중덴(샹그릴라), 축제연습중인 스님들


위의 사진은 송찬림사에서 한참 무언가를 연습하고 있는 스님들. 바로 일주일 후에 이들은 축제가 있었고, 우리도 우연히도 이 축제의 현장에 참여하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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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벳사람 그리고 티벳 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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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11월 13일, 중국 감숙성 샤허, 동티벳에서 만난 티벳


카메라를 잃어버리고 란저우를 거쳐 우리는 샤허라는 동티벳의 어느 마을에 들리게된다. 가까이에 초원지역이 있다는 정보를 가지고, 작은 봉고차를 빌려서 그곳으로 향했다.

그런데, 생각해보라. 한겨울 11월에 뭔 초원이 있겠는가? 눈이 내리는 추운 날씨만 존재할뿐, 너무나 황량한 그곳.
잠시 이곳 저곳 산책을 하는데 어느 티벳사람이 우리를 반갑게 맞이하여 자신의 집으로 우리를 초대한다. 간단한 수유차를 마시며 이런 저런 대화를 시도한다. 물론 대화가 될리가 만무하다. 우리는 중국말을 모르고, 그는 영어를 배우고 싶어하여 더듬더듬 말하기는하나, 중학교 1학년 영어도 안되는 그와 우리의 대화는 진행이 안된다.

그래고 손짓 발짓과 마음으로 그의 따뜻한 생각은 우리에게 다가왔다.

그는 영어를 너무나 배우고 싶어한다. 그래서 주위에 외국인이 보이면 언제나 자신의 집으로 초대하고 이야기를 시도한다.
자신의 노트에다가ㅏ 서로의 인사를 적어주기를 청하기도 한다.
그래서 우리는 매우 운이 좋게도 티벳인이 직접쓴 티벳 글자를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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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11월 13일, 중국 감숙성 샤허, 티벳


뭐 아는지 모르겠지만, 티벳에는 자신들 고유의 문자가 있다.
티벳 문자는 원래 인도의 불경을 자신들의 언어로 옮겨 적기 위해서 발달했다고 한다. 몽고가 전 세계를 지배할때 몽고 글자를 일부 빌려와서 글자를 제작하였는데, 재미있는 사실들이 몇가지가 있다.
먼저, 티벳 글자는 자음과 모음이 존재한다. 연습장에 쓰인 글자를 보면, 꼭 무슨 그림을 그린것 같은데, 사실은 자음과 모음 체계를 가지고 있는 우리나라와 같은 표음 문자이다. 심지어 받힘 글자도 존재한다. 재미있는 사실은, 모음중에는 특수 모음이 있어서(우리는 발음이 불가능하다.) 목울대를 이용해서 발음하는 경우도 있다. (내생각에는 유목민 특유의 영향이 아닌가한다.)
한글 창제시에 어떤 자료를 보면 일부 몽고의 글자에 영향을 받았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아마도 상당한 관련이 있는거 같다.

또한, 불경을 배껴오기 위해서 만들어진 글자라 산스크리트어와 상당히 닮아 있다고 알고 있다. 그래서 글자의 모양이 인도 힌디어와 상당히 닯아 있다. 새로 만들어진 글자이지만, 이러한 영향인지 인도 글자와 같이 상당히 그림처럼 생겼다.

마지막으로, 글자 자체를 꾸미기를 좋아한다. 글자 자체가 우리처럼 반듯반듯한게 아니라서, 가끔은 보면 글자 자체를 가지고 그림을 그리기도 하는데, "옴마니밤메홈"이라는 불교 경구를 쓸때보면 이제 과연 티벳 글자인가 싶을 정도로 꾸밈이 많이 들어가있다.
하지만, 글자체 자체가 상당히 날카로와서 어떨때는 멋있다는 생각이 든다. 꼭 칼로 글자를 세겨 놓은듯한 획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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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티벳의 시대는 끝이 나고 있다.
서부 티벳의 라싸는 이미 중국인들이 점령하고 말았지만, 동부 티벳은 아직 그 전통이 많이 남아있다. 그런데 재미있는 사실은, 내가 말하는 동부 티벳은 현재 공식적으로 중국 영토이다. 감숙성, 사천성, 청해성. 서장 "자치구"가 아닌 중국의 정식 행정 구역인 "성"으로 분리되어 있는 지역이다.
이상하지 않은가? "성"으로 분리되어 있는 지역에 한족이 아닌 왠 "티벳"? 그 이유는 간단하다. 중국이 티벳을 점령하면서, 상당부분의 영역을 티벳으로 분류하지 않고, 중국의 영토로 편입시켰던 이유이다.

어째거나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동부 티벳을 여행하다보면 아직도 많은 이들이 티벳글과 티벳 말을 하고, 티벳의 전통을 지켜간다는 것이다. 거기다가 잘 살펴보면, 중국 정부가 금지한 "달라이라마" 사진을 소장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사진을 경찰에게 들키면 처벌을 당하는 걸로 아는데, 상당수의 주민들이 몰래 소장하고 있다.

하지만, 언젠가 이들도 도시로 나올 것이고, 중국의 문화 탄압은 계속 될것이다.
이제 티벳의 시대는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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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벳하면 떠오르는 오체투지 수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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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10월 23일, 중국 티벳 라싸,대소사(조캉) 앞에서


티벳하면 주로 떠오로는 이미지가 헌신적인 티벳 불교와 오체투지와 같은 순례자의 모습니다.

거의 대부분의 티벳 주민들은 라싸를 방문하고 싶어하고, 그들의 성지인 조캉사원과 포탈라에서 기도를 드리기를 원한다.
우리가 방문한 라싸의 조캉 사원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절을 올리고 있었다.

특히, 그들만의 기도를 위해서 올리는 절하는 모습을 보고 "오체투지"라고 하는데, 온몸의 다섯개의 관절을 바닥에 던지듯이 기도를 한다고 하여 오체투지라고 한다. 다섯개의 관절은 두개의 무릅(무릅을 꿇어야 겠지?), 두개의 팔꿈치(업드려야 한다.) 마지막으로 이마를 바닥에 닫게한다. 말이 쉽지 온몸을 그냥 바닥에 던져서 업드리는거와 같다.
이런 절을 하루에 수십, 수백 아니 수천번을 하는데, 절을 하다가 힘들면 잠시 앉아서 그들의 음식인 "짬파(우리나라 미숫가루 같은 보리 가루)"와 "수유차(야크 버터와 찻잎을 뜨거운 물에 녹인 밀크티)"를 마시며 잠시 휴식을 취한다.

어찌보면 감동적인 장면이어고 어찌보면, 좀 광신적인 느낌도 있다.(물론 보는 사람의 관점에 따라 다다르다.) 나는 감성보다는 이성이 발달한 사람이라 그런지, 광신적인 느낌이 강하더라.

재미있는건 아래 사진처럼, 순례자들이던지 아니면 거지이던지 모르겠지만, 구글을 위해서도 오체투지를 한다.

참. 오체투지는 한자리에서만 하는 것이 아니고 걸어가면서도 하는데, 우리나라 삼보 일배(시민단체에서 사용했지 아마?)처럼 몇걸음 걸어가고 절을 한번 하는 방식으로 하는데, 티벳 오지에서 라싸까지 천킬로가 넘는 길을 이렇게 오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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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10월 23일, 중국 티벳 라싸, 조캉사원 주위에 오체투지를 하며 구걸하는 소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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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싸에 도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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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10월 23일, 중국 티벳 라싸, 포탈라궁 앞에서


라싸. 우리는 결국 그곳에 도착하고 말았다.

고원의 도시이나 이미 망해버린(중국에 흡수되어버린) 티벳 제국의 수도이자, 수많은 순례자들이 방문하기 원하는 그곳, 티벳의 중심 라싸.

라싸에 도착하기까지의 여정.
상당히 고달펐다. 작년말에 드디어 청장철도(淸藏, 중국말로는 칭짱 이라고 하더라)가 뚤리는 덕분에 요즘은 가기가 좀 편해젔다고 한다. 북경이나 상해에서 바로 기차가 다닌다니까 말이지. 48시간이면 도착할 수 있다고 하는데, 꼬박 이틀을 기차로 달리면 꿈에 그리던 라싸에 도착할 수 있다고 말이다.
뭐, 기차도 최신식이라 상당히 괜찮다고 각종 언론에서 말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가 라싸를 찾아간 2005년 11월에는 아직 티벳에 기차가 뚤리진 않았다. 공사는 끝났고 시험운행을 했다는 이야기는 들었다.

청장공로. 청해성(칭하이라고 한다.)의 거얼무라는 작은 도시에서 라싸까지 이어주는 장장 1200 킬로미터의 국도. 말이 1200 킬로미터지 버스로 20시간이 걸리는 거리다. 한반도를 왕복해야하는 거리다. 고도 3천 500미터에서 시작해서 5천미터를 넘나드는 말그대로 높은 길, 고도(高道)이다.

이 칭장공로를 운행하는 교통수단은 우리가 방문할때까지만 해도 오직 자동차였다. 그중에 가장 많이 사용되는 것은 침대버스.
중국에서 침대버스를 타본 사람이 있으면 이해할거다. 그 좁고 불편하고, 거기다가 지저분하기까지. 특히 대도시는 괜찮지만 이곳 변방에서는 난리 지루박도 아니다. 해바라기씨 까먹고, 담배피고, 거기다가 침까지 뱉어댄다. 아주 죽여버리고 싶다. 그런 인간들.
거기다가 침대의 길이는 180센치가 안된다. 나같이 키가 180이 넘는 인간이 타면 거의 고문 수준이다. 다릴를 뻣지 못하고, 그냥 쪼그려서 자야한다. 말이 침대지 절대 편안하지 않다.

이제 이야기를 시작하자.
둔황에서 침대버스를 타고 우리는 거얼무에 도착하였다. 아직 해가뜨기전인 아침시간이다. 거얼무의 고도도 3천미터가 넘고, 10월이 훌쩍 넘어 영하의 날씨를 보인다. 추운데 주위를 돌아보며 라싸행 침대버스들이 많이 서 있는 역전 광장으로 향한다.
우리 얼굴을 보면 중국인인지 한국인인지 구별이 안가기에 몇몇 호객꾼들이 우리에게 접근하기도 한다. 아무 사설 침대 버스에나 가서 표를 달라고 한다.
중국말이 어설프니 당연히 외국인인지 안다. 외국인이 티벳으로 들어갈려면 허가증(퍼킷, permit)이 있어야 하는데, 당연히 우리는 없다.(허가증이 거의 10만원이 넘는 가격이다.) 그래서, 불법으로 넘어가야하는데, 기사도 상당한 위험을 감수해야한다.
그래서 우리에게 상당한 바가지를 씨운다. 1000원(우리돈으로 13만원)을 달라고 한다. 미쳤냐. 내가 그돈주게. 그래서 깍아본다. 700까지 깍고 더이상 안깍인다. 그럼 놔둬라. 니덜 아니라도 갈 방법은 많다.

한시간정도 이런 저런 사람들과 흥정을 해봐서 안된다. 그래서 택시를 타고 또다른 침대버스들이 대기하고 있는 시장 버스 정류장으로 가자고한다. 거기서 다시 가격 협상을 하고, 500원까지 깍았다. 그 가격에도 우리는 만족할 수 없었다. (여행자에게 알려진 일반적인 가격이 300원에서 400원 정도였다.)
그래? 그럼 다른 곳으로 가봐야지. 이번엔 택시 기사가 우리에게 흥정을 건다. 라싸로 가냐고 묻고 어디다가 전화를 해댄다. 그리고, 그쪽으로 가잔다.
이리저리 몇군데 돌아다니다가 드디어 400원에 버스 가격 협상을 마쳤다.(물론 싼 가격은 아니다. 현지인들은 100원 정도에 침대버스를 탄다.)

침대버스는 오후 3시 정도에 출발하고, 우리가 협상을 마친 시간은 오후 1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다. 침대버스에 있으려니 일본인 한명도 타고 있다. 기사가 우리에게 일본인에게 돈 이야기를 하지말라고 그런다. 그래서, 그냥 수인사만 하고 지나친다. (사실 이게 우리의 첫번째 실수다. 좀더 안면을 터 놨어야한다.)

그리고, 만을에 대비해 기사의 얼굴 사진도 찍어놓는다. (여기서 우리의 두번째 실수. 기사 얼굴이 중요한게 아니고, 버스 번호판을 메모해놓거나 짝어 뒀어야 한다.)

이제 오후 3시 정도가 되고, 버스는 출발한다. 사람이 얼추 가득찬 것 같다. 이제 차는 출발하고, 끝없는 고원을 가로 지른다. 저녁 시간이 되어 어느 허름한 식당에서 간단히 저녁을 먹는다.

다시 출발. 어느덧 날은 어두워졌고, 버스는 밤새도록 달린다. 우리가 자다깨다하는 동안 버스는 티벳 경계를 넘었고, 밤 12시 정도에 어느 마을 앞에 잠시선다.

우리는 화장실 가는 시간인줄 알고 잠시 버스에 내려서 근처에 잘 보이지 않는 곳에서 볼일을 본다. 우리 마눌님이 일을 다보고 내가 일을 볼차례에,

갑자기. 버스가 출발해버린것이다.

버스가, 갑자기 출발해버린 것이다. 우리를 허허벌판에 놔두고.
그 버스안에 우리의 가방, 소지품, 옷가지, 내 노트북 등등의 모든 것이 실려있었다. 나는 잠시 화장실 간다가 양말도 벗어놓고, 잠바도 홑잠바 하나 걸치고 나왔다.
미치겠다. 뒤에서 소리를 쳐도 어두운데다 엔진소리때문인지 우리를 발견하지 못한다.
버스는 그렇게 우리를 떠나갔다.

한마디로. 좆.됐.다.

다행히 근처 마을에서 작은 트럭 비슷한게 하나 나온다. 우리는 다짜고짜 세워서 뭐라고 뭐라고 소리친다. 어떻게든 저 버스를 쫒아야한다.
그래서 새워야 한다. 트럭 기사도 대강 상황을 눈치 챘는지 열심히 버스를 따라가지만, 왠걸, 그놈의 버는 왜그리 빠르냐.
좀 쫒아갈만하면 저 앞에 또 나선다. 절대로 우리가 버스를 따라잡을 수가 없다. 마침, 트럭의 기름도 다되어 기사가 더이상은 갈 수 없다고 한다. 할 수 없이 우리가 버스를 놓인 지점으로 다시 되돌아왔다.

춥다.
졸라 춥다. 진눈깨비까지 내린다. 나는 양말도 신지 않은 맨발에, 홑잠바다. 우리 마눌 당황해서 눈물을 흘린다.

할 수 없다. 어떻게든 라싸로 들어가야한다. 라싸로 들어가서 그 버스를 찾아야한다. 최대한 빨리 버스를 찾아야한다. 그래야 우리의 여행을 계속 할 수 있다.

길가에서 히치하이킹을 하기로 결정한다. 밤이라 그런지 차들도 뜸하다. 지나가는차를 모조건 세울려고 한다. 대부분의 차들은 라싸로 향하기 때문에.
대부분 서지 않고 그냥가고, 트럭이 잠시 서더라도 우리를 태워주지 않는다. 우리가 중국말을 못하는데다, 불법으로 입경한걸 눈치챈거다. 잘못걸리면 벌금이다.

한 30분을 추위에 벌벌 떨며, 그리고 불안에 떨며 기다린다. 거의 포기할때쯤 되니 저 멀리서 침대버스 하나가 들어온다. 차가 잠시 서고(사실 우리가 내린 곳이 차를 정비하는 공간이라고 보면 된다. 대부분의 침대버스는 다 한번씩 선다.), 우리는 기사에게 달려가 손짓발싯으로 우리 사정을 이야기한다.
태워줄테니 차비을 달란다. 처음에는 상당한 금액을 불렀는데 우리가 돈 없다고 우기고(사실 내 복대와 지갑은 내 손에 있었다.) 그 버스 찾으면 그 버스에서 돈 받아준다고 한다.(물론 손짓 발짓으로..)

어찌어쩌하여 다시 침대버스를 갈아타고 라싸로 달려간다. 고산지역이라 산소는 부족하지, 마음은 불안하지, 그래서 잠도 제대로 못자지. 우리 마눌님은 결국 고산병이 찾아온다. 나는 그런대로 버티고 버틴다.

라싸에 드디어 도착했다. 우리를 태워준 버스 기사는 우리에게 우리를 놓고 간 버스를 찾아주겠다고 이야기한다. (물론 우리한테 차비를 받아내기 위함이다.) 지나가는 택시를 잡아타고 라싸의 버스터미널을 찾아간다.
라싸를 방문해본 사람들중에 극소수만 아는 사실이지만, 라싸에 버스 정류장은 4군데가 넘는다. 사설 버스들이 각자 서는 위치가 다 다르기 때문이다.
우리가 그 버스에 대해서 알고 있는건 버스의 색깔과 기사의 얼굴. 번호판도 회사도, 심지어 차표도 없다.(암표니 당연히 차표가 안나온다.) 이제 라싸의 모든 버스 터미널을 다 찾아야한다. 문제는 사설 버스는 손님을 내리고 자기들의 숙소로 버스를 그냥 몰고 가버리니까 터미널에 있으란 보장은 없다.

첫번째 버스 정류장, 없다. 두번째 정류장. 또 없다. 세번째인가 네번째인가 마지막으로 공용 버스 정류장으로 가장 큰 정류장을 찾아간다. 여기에도 없으면 우리가 가방을 찾기는 영영 힘들어진다. 거의 포기상태이다.
라싸 공용 버스 정류장. 버스 엄청나게 많이 있다. 여기서 어떻게 찾지? 둘러보니 버스가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 포기. 절망.

그 순간 어디선가 눈에 익은 버스가 터미널로 들어온다. 맞다. 저버스다. 소리를 친다. 너무나 큰 소리로. "야~~ 거기서!!" 주위의 모든 사람들이 우리 곁으로 몰려온다.
버스 기사도 우리를 알아보고 차를 멈추고 우리에게 다가온다. 우리는 일단 소리부터 치면서 한국말로 야단을 친다. 너무나 당황스럽고 너무나 다행스럽다.
다행히 착한 침대버스 기사는 우리의 짐을 손도 안되고 그대로 보관하고 있다. 짐들이 잘 있나 확인하고 우리를 중간에 놓고간 책임을 물어 한사람당 100원을 돌려받는다. 받자 마자 우리를 마져 태우고온 기사가 돈을 가로챈다. 뭐. 어짜피 주기로한 돈이니 전혀 불만없다.
우리는 우리의 짐들을 무사히 찾은걸 다행으로 여길뿐이다.

그렇게 어렵게 어렵게 우리는 라싸에 도착하고 말았다.

라싸에 고생스럽게 도착한 우리에게 즐거움과 행운이 기다리고 있었다.
숙소는 전에 라싸에 와서 묵었던 유스호스텔로 정했다. 방값도 싸고 시설도 그런대로 괜찮다. 라싸에서 가장 유명한 야크호텔이 있지만, 거기보다 유스호스텔이 더 싸다.
가장 좋은건 조선족이 운영하는 "아리랑"이라는 한국식당이 같은 건물에 붙어 있다는거. 거기다가 인터넷 까페도 붙어 있어서 상당히 편리하다.

숙소에 짐을 대강 풀어놓고, 나는 밖에 나가서 점심을 사오기로한다. 우리는 그전날 저녁부터 라싸에 도착한 점심이 될때까지 물한목음 제대로 마시지 않았던거다.
점심을 사오고 나니, 우리 마눌님이 반가운 소리를 한다. 숙소에서 아는 사람을 만났단다. 누구? 전에 파키스탄에서 만났던 "깡언니"라고 한다. 얼라? 그 사람들이 여기 왜있어? 라싸에 어찌어찌해서 들어왔단다.
점심을 먹고 만나기로 하고 일단 점심을 대강 먹고 한숨 잔다.

저녁은 깡언니와 함께 한국 식당 아리랑에서 저녁을 함께한다. 그때 깡언니가 라싸에서 만났다는 또다른 여자 여행객 "까오리"를 소개한다. 우리는 까오리를 처음 보자마자 티벳 현지인인줄 알았다. 검은 얼굴에 티벳 장신구를 하고 있는 그녀. 말만 티벳말을 한다면 영락없는 티벳사람이다.

저녁을 먹고 나와서 또 어슬렁 돌아다니는데, 또다시 어디선가 많이 봤던 사람이 눈에 띈다. 바로, "길아저씨". 까오리랑은 또 아는 사이라네?(소문엔 사귄다는 이야기도 있다. ㅋㅋ) 원래 티벳에는 들어올 예정이 없었는데 정말 우연히 마주치게된거다. (근데, 이건 다음날 이야기인가?)

며칠을 또 지내고 있자니 또 다른 사람을 만나게 된다. 이번엔 전에 카슈가르에서 만났던 "드라마 작가 3남매" 실제 남매는 아니고 여자분 3분이 함께 다녀서 그렇게 불렀다. 참 대단한 우연들이다.

거기다가 여행하는 사람들 끼리 이리저리 통성명하고 인사를 하다보니 어느덧 패거리가 만들어졌다.
우리 2명에, 깡언니, 까오리, 길아저씨, 작가 3남매, 거기다가 칭따오에서 넘어오신 아저씨, 전라도에서 도자기 만드는 아저씨와 조카.
거의 항상 저녁을 아리랑에서 함께 하며 삼겹살도 구워먹고 찌게도 끓여먹으면서 항상 파티를 하는 기분으로 하루하루를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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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의 티벳 스님들, 그리고 달라이 라마


 
(2005년 7월 13일, 인도 맥그로드간즈, 티벳 스님들)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인도의 맥그로드간즈는 티벳의 고승이자 지도자인 달라이라마가 피신해 있는 곳이다.
 
달라이라마가 항상 그곳에 머무르지는 않지만, 우리가 갔을때는 마침 달라이라마의 친견이 진행되고 강연이 있는 때였다.
 
그래서 여기저기서 손님들이 찾아와 직접 강연을 듣고 그래서 다른때보다는 좀 활기찼던것 같다.
 
강연을 마치고 다시 자신의 보금자리로 돌아가는 티벳 스님들.
즐거운 미소가 그들의 얼굴에 함께한다.
 
그들에게 평화가 있기를. 그리고, 달라이라마에게 평화가 있기를.
 
PS. 난 달라이라마가 누군지도 잘 모르고, 티벳 불교에 관심도 별로 없다.
그래서 그 보기 힘들다는 달라이라마 강연을 직접 볼수 있는 기회를 앞에 두고도 나는 참여하지 않았다.
그래도 후회는 절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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