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딩'에 해당되는 글 8

  1. 2007.04.29 저 멀리 펼처진 길 위에서
  2. 2007.04.29 지금은 웃고 있지? 어제는 죽을뻔 했어
  3. 2007.04.27 새해첫날, 야딩 한판. (2)
  4. 2007.04.27 천막에서 보낸 하루,해질 무렵
  5. 2007.04.27 야딩 마을의 일상
  6. 2007.04.18 가난한 아저씨의 천진난만함
  7. 2007.04.17 그대. 처절함을 원하는가?
  8. 2007.04.17 이제 더욱 골짜기로,야딩의 입구 르와 마을로 출발하다 (1)

저 멀리 펼처진 길 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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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1월 3일, 중국 사천 리탕, 리탕으로 가는 길


뭐, 그렇게 우리 여행의 하일라이트는 끝났다. 어쩌면 야딩을 마지막으로 진정한 의미의 여행은 어느정도 끝났다고 보면 된다.
그다음에는 편안한 잠자리와 그저 그런 볼거리. 그리고 번잡한 도시 문화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야딩에서 빠져나온 우리는 따오청을 거쳐 야딩으로 향한다. 야딩으로 향하는길. 사천성 성도에서 티벳으로 들어가는 천장공로(川藏公路).

끝없이 펼쳐진 길이 우리를 맞이하고, 또다시 무수하고 때론 단조로운 풍경이 우리를 스쳐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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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1월 3일, 중국 사천 리탕, 리탕으로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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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1월 3일, 중국 사천 리탕, 리탕으로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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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웃고 있지? 어제는 죽을뻔 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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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1월 2일, 중국 사천 야딩, 지금은 웃고 있지?


사진에 보이는 우리 마눌. 그 어느때보다 표정이 밝다. 간밤에 불편한 자리지만 편하게, 푹 쉬었더니 얼굴이 한결 밝다.
하지만, 어제를 기억해봐. 우리 죽을뻔 했잖아?

그리고, 난 아침에도 죽얼뻔 했다고. 힘들어서.
야딩 마을에서 등산로까지 경사가 그렇게 급한지 난 몰랐단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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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첫날, 야딩 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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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1월 1일, 중국 사천 야딩, 낙융목장의 아침


야딩. 1930년대 한 영국인 탐험가가 이곳을 지나치며 샹그릴라라고 칭했고, 다시 이곳을 찾기를 원했으나 몇번의 탐사를 시도해도 결국 이곳을 찾지는 못했다. 1950년대 중국의 서부 개발을 통해서 결국 잃어버린 샹그릴라가 바로 이곳 야딩이라는 것이 알려졌고, 지금은 많지는 않지만 간간히 여행객들이 이 곳을 찾아든다.
지금 이곳은 중국 사천성의 몇안되는 자연보호구로 지정되어 보호(?)를 받고 있다.(살인적인 입장료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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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1월 1일, 중국 사천 야딩, 얼어버린 우유해


평소 물빛이 우유빛같다고 해서 붙여진 산중의 작은 호수 우유해. 우리가 찾아갔을때는 꽁꽁 얼어붙어 있었다. 하지만, 어쩌면 얼어 있는 모습이 더 멋있는지도 모르겠다. 어디서도 보기힘든 푸른색의 얼음을 우리는 마음껏 즐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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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1월 1일, 중국 사천 야딩, 눈앞에 펼쳐진 빙하


야딩은 3개의 설산으로 이루어져있고, 모두 6천 미터가 넘는 고봉들이다. 트래킹 코스는 이 산들 중에 가장 앞쪽에 나와있는 산을 중심으로 한바퀴 라운딩을 하는 것이 주요 코스이다.
3개의 설산은 모두 그 생김이 성스럽다고 하여, 현지 티벳인들은 모두 신들이 살고 있는 성산들로 생각하며, 이 곳을 라운딩 하는 것을 하나의 수행의 방법으로 택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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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1월 1일, 중국 사천 야딩, 최피디, 그리고 마눌님


이곳 야딩을 방문한 우리 3명은 열심히도 걸었다. 상당히 힘들고 다들 지쳐있어서 멋있다고 생각은 했지만 그 멋의 정도가 어느 정도인지는 모르고 있었다.
여행을 끝내고 이 사진을 보고 최피디는 감동을 하더라. 우리가 과연 이 곳을 다녀왔단 말인가.
어떤 캐나다 여행객은 이곳이 록키산맥보다 더 웅장하다고 말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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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1월 1일, 중국 사천 야딩, 여기가 끝인가?

어느 산마루에 올라 우리는 그곳이 끝인줄 알았다. 지칠대로 지친 우리는 이곳만 넘으면 내리막이고 트래킹의 끝인줄 알았다. 기분족게 포즈를 한번 취한 우리 마눌님과 최피디. 하지만, 이게 끝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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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1월 1일, 중국 사천 야딩, 멋진 포즈의 최피디

최피디의 카메라로 내가 찍은 사진. 역시 사진은 카메라가 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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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1월 1일, 중국 사천 야딩, 매마른 대지


매마른 대지. 우리는 걷고 걸었다. 이저 저기 보이는 길을 따라가면 마을이 나올거야. 그래 그럴거야.
우리는 충분히 걸었잖아? 아침 9시가 조금 못되어서 출발한 트래킹은 이제 12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우리는 불행히도 점심 먹을 거리를 챙겨오지 않았고, 6시간이면 하산이 가능한 것으로 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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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1월 1일, 중국 사천 야딩, 나붓기는 깃발들

이곳이 신들이 모여서 살고 있는 성스러운 지역인 만큼 많은 티벳인들의 종교적 표식을 우리는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이러한 종교적 표식은 우리의 길잡이를 해주었다. 만일 이런 표식이 없었다면 우리는 길을 잃었을지도 모른다.
자연보호구라고는 하지만, 낙융목장을 지나서면 중국 정보는 관광객을 위한 어떠한 배려도 하지 않았다. 그래서, 우리는 티벳인들이 남겨놓은 깃발과 돌무더기 만을 보고 길을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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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1월 1일, 중국 사천 야딩, 젖됐다. 시바


우리는 절망했다. 너무나 절망했다. 아침을 먹고 출발해서 7시간을 걸었지만 끝이 나오지 않았다. 내리막과 오르막을 계속 반복하며 우리는 걷고 걸었다. 산중에는 물도 없고 인가도 없다. 우리는 먹을 것도 마실물도 거의 떨어져간다. 하지만, 마을은 우리에게 보이지 않았다.
그나마 힘이 남아 있는 나는 빠른 걸음으로 바로 앞에 마지막으로 보이는 언덕을 올라갔다. 저 언덕만 넘으면 마을이 나올거야. 그래 아마 그럴거야. 하지만, 언덕 꼭대기에 ㅗ착해 보니, 마을은 커녕 다시 내리막과 오르막이 시작되었다.
뒤따라오는 마눌님과 최피디를 향해 나는 외쳤다.
"야. 좆됐다."

그렇게 OTL하고 있는 우리들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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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1월 1일, 중국 사천 야딩, 정상에 버려진 막대기들


드디어 정상에 도착했다. 우리는 정상에 도착했다. 해발고도 4700미터. 우리가 그렇게 바라고 바라던 정상에 도착했다. 하지만 우리는 너무나 지쳤다.
우리와 같이 이렇게 힘겨운 고행을 한 흔적들. 많은 이들이 이곳을 다녀가면서 산에서 주워서 자신의 지팡이가 되었던 막대기들을 이곳 정상에 무수히 버려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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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1월 1일, 중국 사천 야딩, 정상에서 마지막 웃음


정상에서 우리는 기념사진을 찍었다. 이제는 끝이다. 진짜 끝이다.
이 사진을 찍은 시간이 오후 6시. 산아래에 마을이 보인다. 빨리 내려가면 마을에 도착할 수 있다. 이미 해는 뉘엇뉘어 지고 있었다. 서둘러야한다. 서둘러야한다.
배는 고프고 다리는 아프고 정신은 없었다. 하지만 조난 당할수는 없다. 내려가자.

우리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최대의 속도로 하산을 시작했다. 7시가 되자 이제 컴컴해진다. 아직 마을은 나올 생각을 하지 않고 내려갈 길은 아직도 멀다. 산길이 그렇게 멀어보이기는 또 처음이다. 7시 30분이 되지 아무것도 안보인다. 어둠이다.
산중이라 가로등이 있을리없고, 앞에서 말했지만 정부에서 관광객을 위한 등산로를 만들어 놓은 것도 아니라 어디가 길인지도 보이지 않는다. 그나마 내가 가지고 있는 랜턴은 너무 어두워서 쓸모가 없고, 최피디가 가지고 있는 랜턴 하나에 3명이 길을 다잡아간다.

내려가다 내려가다 결국 길을 잃었다. 이길도 아닌것 같고 저길로 가도 가시밭이다. 마눌님은 울려고 한다. 우리는 마음을 다잡고 길을 찾는다. 찾다보니 어딘선가 조그마한 불빛이 보인다. 살았다.
우리는 급한 마음에 "웨이~(중국말로 여보세요)", 심지어 한국말로 "누구 있어요?"하고 소리친다. 중국에서 한국말로 살려달라고 외치는 바보들이 되었다. 하지만 기적 같이 어디선가 "누구세요?"하고 우리에게 대답한다. 한국말로. 기적이다.

소리나는 곳으로 찾아가다 우리는 황소 한마리를 만났다. 황소의 부리부리한 눈이 랜턴 불빛을 받으니 악마의 눈처럼 보인다. 깜짝 놀랐다. 아마 소가 그렇게 무서운 얼굴을 가지고 있다고는 생각못해봤다.

소리가 난 곳은 야딩 풍경구 안에 있는 조그마한 절로, 그 앞에는 매점을 하고 있는 집이었고, 손님들이 돈을 내고 재워달라면 재워주기도한다. 다행히 그날 어떤 한국인 여행객 한명이 야딩에 늦게 도착해서 그곳에서 하룻밤을 보내기로 하고 잠잘 준비를 하다가 우리의 목소리를 들었던 것이다.
숙소에 들어가 우리는 아무것나 먹기로 하고 컵라면을 시켰다. 맥주도 있었다. 너무나 지치고 힘들었던 우리는 가리지않고 쩝쩝거리며 먹기 시작한다.

그렇게 야딩 트래킹은 끝났다. 2006년의 새해 첫날을 우리는 죽을 고비를 넘기며 보냈다. 하지만, 우리의 1년이 넘는 여행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하루가 되었다.


야딩을 방문하는 여러분에게. 한가지 충고.
야딩을 라운딩 한다고 생각하면 일정은 절대로 1박 2일로 잡아야한다. 첫날은 5시간 정도면 낙융목장에 도착할 수 있으니 큰 문제가 안된다.
하지만 둘째날은 14시간 정도의 산행이 있으므로, 아침 일찍 세벽밥을 지어먹고 출발해야한다. 산중에는 물이 없으니 충분한 식수와 먹을 거리를 준비해야한다. 그리고 랜턴도 꼭 챙겨야하고.
쉬운 트래킹 코스는 아니므로, 반드시, 반드시 마음가짐을 단단히 해두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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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막에서 보낸 하루,해질 무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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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12월 31일, 중국 사천 야딩,낙융목장의 천막에서


야딩 마을에서 점심을 먹고 낙융목장에 도착할쯤, 이미 시간은 해가 뉘엇뉘엇 지고 있었다. 한겨울에 고도 3000미터가 넘는 이 지역은 남쪽아라고는 하나, 상당히 춥다.

해질무렵 천막(정확하게는 판자집) 안에 난로불을 쬐고 있으려니, 마지막 남은 몇가닥의 햇빛이 우리를 비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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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딩 마을의 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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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12월 31일, 중국 사천 야딩,야딩 마을의 어느 집 마당


야딩 마을의 한가로운 아니면 힘겨운 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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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아저씨의 천진난만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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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12월 30일, 중국 사천 르와, 가난한 아저씨의 천진난만함


천진난만한 아저씨. 아저씨, 다시보니 상당히 귀여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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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12월 30일, 중국 사천 르와, 밀가루 트럭과 노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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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 처절함을 원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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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12월 29일, 중국 윈난 샹청,처절함의 극치


처절함이 느껴지는가?
어디 피난을 떠난 이산가족이 갑자기 만나서 감격의 포옹을 하는 것 같지 않은가? 그렇게 야딩 한판은 약간 처절했다.

(사실 사진은 최피디가 정해준 포즈에 따른 계획적인 포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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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12월 29일, 중국 윈난 샹청,르와를 가는 길목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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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더욱 골짜기로,야딩의 입구 르와 마을로 출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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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12월 29일, 중국 윈난 샹청,눈덥힌 고개길


야딩을 다녀온 우리는 따뜻한 숙소에서(최피디는 차가운 유스호스텔에서 ㅋㅋ) 며칠을 묵으며, 다음 여행을 계획한다.
원래의 우리 계획은 이제 쿤밍으로 돌아가 편안한 도시 생활을 며칠간 즐기며, 해남도를 다녕오던지 아니면 귀국길로 접어들기 위해 장가계와 계림을 방문하던지 할 예정이었다.
그런데, 최피디는 자신이 원래 계획했던 야딩으로 떠난다고하는데, 계속 우리에게 같이 가자는 신호를 보내고, 야딩이 좋다는 이야기를 익히 들어왔던 우리는 고민고민하다가 그리로 함께 가기로한다.

야딩. 요즘 나온 가이드북에는 야딩에 관한 이야기가 조금씩 나오고, 아마 인터넷에 검색하면 조금씩 자료가 나올것 같다만,
http://www.sinology.org/trotzdem/multi_board/board_view.asp?board=databoard11&idx=4&page=1
http://www.mountain21.co.kr/mmvilla_read.html?boardcode=1002&no=42

사실 우리가 그곳을 찾아보기로하고 준비하고 찾을 수 있는 자료는 별로 없었다. 그전에 여행객들에게 들은 귀동냥 정보만 가지고 있었고, 수미여행사 등에서 얻은 몇몇 인터넷 자료밖에 없었다.
거기다가 때는 한겨울. 며칠전에 다녀온 사람의 이야기를 전해들은 바로는 폭설이 내려 엄청나게 고생했다는 이야기. 포기할까 말까하다가 결국 최피디의 꼬임에 넘어가게 되었다.

말이 쉬워사 야딩을 간다고 하지, 실제로 일반 여행자들이 접근하기는 너무나 부담스럽다. 우리가 출발한 중덴에서 차를 타고 3일을 달려서야 도착할 수 있는 오지이다. 성도(청두)에서 출발한다고해도 그정도의 시간이 걸리는 엄청나게 오지중의 오지이다.

처음에는 간다고 이야기하고 다음날 떠나기로 말해놓고 저녁이 되어 생각해보니, 우리의 중국 비자가 만료되기 딱 10일 남았더라. 근데, 야딩을 한번 다녀오면 10일 안에 성도에 도착할 수 있을지 알 수 없는 노릇이고, 잘못하면 벌금 물게 생겨서, 저녁에 최피디에게 미안하다고, 못가게 되었다고 말하니, 최피디. 비자를 연장하라고 하고, 하루 더 기다리겠다고한다.
그의 성의를 봐서라도 이제는 더이상 안갈수는 없게되었다.

다음날 중덴 공안(경찰서)에서 비자를 연장하고,(당일 연장에 1달짜리) 다음날 아침 우리는 길을 떠난다.

샹청이라는 곳까지 버스를 거의 8시간 가까이 타고 가서 샹청에서 가장 좋은 호텔에 짐을 풀었다. 방값은 100원 정도. 깍고 깍고 해서 만든 방값이지만, 2.5성급 숙소라 그 어떤 숙소보다 편안하고 따뜻했다. 하지만, 거기서 다시 한국인 친구를 만나 결국 밤새도록 카드치며 놀아서 따뜻한 숙소에서 편안한 잠을 청하지는 못하고 말았다.


결국 그렇게 우리는 여행에 길이 남을 야딩한판을 시작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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